독서

[더불어 숲] 신영복의 세계 기행 ④ - 콩코드 광장의 프랑스 혁명

mood.er 2019. 7. 1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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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은 오늘도 바스티유의 돌멩이들을 적시며 흐른다


오래전 파리를 여행하면서 엄청난 양의 문화유산과 예술 작품,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파리지엥들, 골목마다 너무나 잘 보존된 100년도 훨씬 더 된 가옥, 에펠탑이 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는 현지인과 여행객을 보며 그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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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파리의 센 강을 바라보면 무엇보다도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까지 지속되었던 프랑스의 시민혁명이 떠오릅니다. 특히 유명한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의 작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나 자신이 지금 프랑스 혁명 한가운데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하고 상세한 묘사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 [더불어 숲] 신영복의 세계 기행 네 번째 이야기의 주제는 '센 강은 오늘도 바스티유의 돌멩이들을 적시며 흐른다' - 콩코드 광장의 프랑스 혁명 - 입니다.




(*신영복 교수님의 글에서 발췌)


"바스티유 광장으로부터 콩코드 광장에 이르는 길, 이 길이 프랑스의 근대사이다." 이 말을 프랑스 혁명사에 나오는 수많은 사건이 이 길을 무대로 하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바스티유 감옥, 루브르궁전, 시 청사가 이 길에 있으며, 시민들이 최초로 무장을 갖추었던 폐병원, 나폴레옹이 대관식을 올린 노트르담 사원, 그리고 혁명과 반혁명의 기라성 같은 영웅호걸들이 단두되었던 기요틴 등 혁명의 시작과 끝이 이 길에 총총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감옥 함락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혁명의 교과서라고 할 만큼 인류사가 겪었던 모든 혁명의 모든 국면과 명암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사회 모든 계급의 원망과 소망을 남김없이 분출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얼굴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장대한 드라마로 진행되었습니다. 음모와 배신, 정의와 공포, 산악과 평원......, 이 모든 것이 뒤엉켜 달리는 산맥의 질주였습니다.


혁명이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 내려는 미지의 작업입니다. 따라서 인식의 혁명이 먼저 요구됩니다. 낡은 틀을 고수하려던 특권층이나 그 낡은 틀의 억압에 항거하는 농민들의 인식은 확실한 그림으로 나타나고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낡은 틀이 와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틀에 대한 분명한 구상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 이것이 진정한 위기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프랑스 혁명 과정의 숱한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바로 그러한 위기의 필연적 귀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힘과 미덕, 이상과 현실이라는 팽팽한 긴장감도 사라지고 지금은 다시 '이상이 없는 현실', '현실이 없는 이상'이 함께 추락하는 역사를 맞고 있습니다. 이제는 파리의 거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던지는 투표용지 속에도 혁명의 흔적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승리라고 믿습니다. 


'이상(理想)은 추락함으로써 싹을 틔우는 한 알의 씨앗'이라는 시구가 생각납니다. 소수의 그룹이나 개인에게 전유된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민중들에 의해서 이상이 공유되고 있는 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에 있어서 승리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실패는 그래도 역사가 되고 역사의 반성이 되어 이윽고 역사의 다음 장으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혁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정신의  세례를 받았는가에 의해서 판가름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2,300만 명의 모든 프랑스 국민이 함께 일어선 프랑스 혁명은 실패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요틴(프랑스혁명 당시 죄수의 목을 자르는 형벌을 가할 때 사용한 사형기구)이 서 있던 자리는 밟는 감회가 비상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발밑에 묻혀 있는 혈흔이 전율처럼 번져 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은 발밑의 땅이 아니라 머리 위의 하늘입니다. 광장을 가득히 메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리 위에 쏟아졌던 자유. 평등. 박애의 세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곡선(曲線)의 콩코드'이며 '비극에 대한 축복'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진보와 성장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때 공감했던 감동은 마치 바다를 찾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물길을 틔워 나가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는 덜 나쁜 세상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게 하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키워 주며, 진보와 성장의 의미를 새로이 만들어 가리라 믿습니다.


세월도 흐르고 강물도 흐르고


우리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른다.


- 아폴리네르 -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너희의 군대를 만들어라. 나아가자, 나아가자. 


더러운 피를 물처럼 흐르게 하자!" 


 -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 가사 -


1789년 6월, 베르사유궁의 테니스 코트에서는 이런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우리는 헌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총칼의 위험에도 결코 해산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시민들 모두 낡은 질서와 사상을 타파하기 위한 절규와 몸부림으로 시작된 혁명이 나중에는 시민들의 광기 어린 살육으로 변질된 사실을 보며 인간의 본질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신영복 교수님의 글을 읽고 '이상(理想)은 추락함으로써 싹을 틔우는 한 알의 씨앗' 안에서 결국 '비극에 대한 축복'을 찾는 넓은 시야와 통찰력 있는 사고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떠올려 봅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정신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싹 틔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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