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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 박은식 3

국혼을 지킨 역사가 - 백암 박은식 ②

박은식 선생님께서는 일제의 강압적인 검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연무제진 즉, 의병운동과 연계하여 나란히 함께 전진한다는 의미로 애국 계몽운동과 의병운동을 함께 연계하는 것을 강조하였고, 이러한 사상은 우리 국민들의 애국 사상을 고취시키고 한마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수록 민족 사학을 통한 구국 계몽운동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여겨 1910년 조선 광문회(한국고전간행단체)에 들어가 우리 민족의 고전을 발굴하고 편찬하였습니다. 조선 광문회는 일제의 문화 말살정책과 식민지 우민화 정책에 대해 꾸준히 저항하였으며, 이 때 주시경, 권덕규 등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인 의 편찬을 준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전글 보기[독서] -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다...

독서 2019.08.19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다. - 백암 박은식 ①

지난 시간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삶과 민족 중심의 역사관에 이어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 선생의 삶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쓰셨던 업적에 대해 함께 알아보려고 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과 백암 박은식 선생님 두 분 모두 애국계몽사상가, 언론인,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 민족사관 중심의 역사가로서 많은 부분이 닮았습니다. 하지만, 두 분의 발자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박은식 선생님께서는 당시 서당 훈장이며 농촌의 선비셨던 아버지 박용호와 어머니 노 씨 사이에서 1859년 9월 30일 황해북도 황주군 남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추천포스팅[독서] - 1945년 8월 15일 광복절[독서] -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 - 단재 신채호 ①[독서]..

독서 2019.08.18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생애 ②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세워지고, 평정관이 된 신채호 선생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정원(1919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입법기관)의원으로 선출된 후 7월에는 전원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대동청년단(1947년 9월 결성된 청년운동단체)의 단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신문 을 통해 임시정부기관지과 맞섰고 더욱 더 철저하고 준열한 독립운동론을 주장하며, '신대한사건'을 일으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완용은 나라를 팔았지만, 이승만은 아직 되찾기도 전인 나라를 팔아먹으려 하는 오히려 이완용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반대하던 이승만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면서 단재 선생님은 모든 직책을 그만두고 임시정부와 결별한 후 베이징으로 돌아갔습니다...

독서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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