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더불어 숲] 신영복의 세계 기행 ⑥ - 잉카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mood.er 2019. 7. 1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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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것은 낙엽뿐이어야 합니다.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불리는 '마추픽추'는 피라미드, 만리장성, 예수상(브라질) 등과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입니다. 현대와 같은 운반 장비 및 도구가 없었던 그 시대에 잉카인들은 어떻게 수천 톤의 돌을 그토록 높고 경사진 면에 세워 쌓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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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정복자 피사로를 피해 15세기 잉카인들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보이며 약 10,000여명의 잉카인들이 이곳에서 거주했다고 합니다. 잔혹무도한 정복자를 피해 이곳으로 몸을 숨긴 잉카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지, 어디에 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해집니다.


오래 전 가수 윤상, 유희열, 이적, 이렇게 셋이서 여행하는 TV프로그램에서 잉카제국의 최후의 흔적이 남겨진 '마추픽추'에서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기나긴 세월, 잉카인들의 슬픈 역사와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추픽추'가 모습을 드러내자 세 명의 출연자들은 말문이 막혔고 고귀하고 숭고한 그 곳을 바라보았을 때 저도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벌어진 잔혹한 참상의 실체를 파헤칠수록 인간의 탐욕과 극도의 이기심으로 인한 반감이 생기지만, 지금은 과거가 되어버린 역사를 그대로 외면하거나 모른 척 한다면, 반성의 기회도 없을 것이며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가가기 어렵고 힘들며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것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진심으로 반성했을 때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에서 발췌)


"당신의 향기가 나의 뿌리를 타고 내가 들고 있는 술잔까지 올라온다." 침묵의 도시 '마추픽추'의 폐허에서 술잔을 들면 바예호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이곳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잉카인의 슬픔이 술잔 속에서 잔잔한 물결을 일으킵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황금 추적자들에게 쫓기고 쫓기던 잉카인들이 마지막으로 은거한 최후의 도시가 '마추픽추'입니다.


해발 2,400 m의 '마추픽추'에 서면 어디론가 쫓겨 간 잉카인의 비장한 최후가 가슴에 젖습니다. 이곳 '마추픽추'만큼 떠나는 것의 비극성이 사무치게 베어 있는 땅도 없습니다.


나는 이 '마추픽추'가 숲이 되지 못하고 메마른 폐허로 남아 있는 산정(山頂)이 비극의 어떤 절정 같았습니다. 왜 우리의 역사에는 지혜와 땀이 어린 터전들이 황량한 폐허로 남아야 하는가, 이곳뿐만 아니라 우리는 도처에 얼마나 많은 폐허를 갖고 있으며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폐허를 만들어 내야 하는가, 잉카의 하늘을 지키던 콘도르마저 사라진 하늘에는 애절한 삼포냐 음률만이 바람이 되어 가슴에 뚫린 공동을 빠져나갑니다.


1911년 이곳을 발견한 하이럼 빙엄은 이곳이 잉카 최후의 도시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곳은 최후의 도시로 전승되어 온 '비르카밤바'가 아니며 잉카인들은 이곳으로부터 다시 어디론가 떠나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르카밤바는 잉카 최후의 도시로서 황금으로 만든 물건들이 대량으로 묻혀 있을 것으로 추축되는 황금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빙엄 역시 엘도라도를 찾아 헤매던 익스플로러였으며 그가 잉카 어린이의 안내로 이곳에 도착한 후 실어 낸 짐이 무려 나귀로 150마리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 짐들 속에 금붙이는 단 한 개도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곳이 최후의 잉카 도시인 전설의 비르카밤바였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잉카의 수도 쿠스코가 침략자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올란타이탐보까지 함락되었다는 급보를 받은 이 도시 사람들이 이곳 '마추픽추'에다 모든 유산과 병약한 이들을 땅에다 묻고 황급히 아마존의 밀림 속으로 흩어져 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어쨌건 이곳은 잉카가 잉카로서 남아 있던 최후의 도시임에는 틀림없습니다.험준한 산악에서 단련된 건각은 우리가 잃어버린 유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마추픽추'에 남아 있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잉카의 광대한 제국을 지탱하던 건각이 관광 상품으로 남아 있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1780년 페루의 농민 반란은 스페인으로부터 온 침입자들에게 나라를 잃은 후 수백 년간 노예의 삶을 살아오면서 겹겹이 쌓인 분노의 표출이었습니다. 이러한 농민 반란은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탄압되었고, 농민 혁명을 일으킨 콘도르칸키는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당했지만, 그의 존재는 침입자들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상징하는 징표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잉카인들은 영웅이 죽게 되면 콘도르라는 새가 된다는 전설을 믿었다고 합니다. 콘도르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뜻하는 새의 이름이며 '엘 콘도르 파사'의 원곡이 바로 잉카의 토속음악을 바탕으로 작곡된 오페레타 '콘도르칸키'의 테마 음악 입니다. 잉카의 언어 '케추아'어로 된 콘도르칸키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노래의 가사를 소개해드리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오, 하늘의 주인이신 전능한 콘도르여, 


우리를 안데스 산맥의 고향으로 데려가주오.


잉카 동포들과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의 가장 간절한 바램입니다. 


전능하신 콘도르여,


잉카의 쿠스코 광장에서 나를 기다려 주오.


우리가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거닐 수 있게 해주오.


페루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엘 콘도르 파사'를 듣고 있노라면 콘도르칸키가 그토록 원했던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향한, 가슴속 깊이 솟아오르는 조국을 향한, 애절하고 가슴 절절한 그리움에 가슴이 뭉클해져옵니다.


잉카인들이 그토록 원했던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음에 깊이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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