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날씨가 화창했던 6월의 어느 날 늦은 저녁 산책을 나와 여기저기 거닐다가 강남역 부근 테헤란로를 지나가는데, 근처 학원가에서 공부하던 엄청난 무리의 학생들이 끝도 없이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는, 대치동 학원가의 밤 10시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각까지 학원가에서 토익, 토플, 공무원 시험,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열기로 낮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에 토플, 토익 전문 학원의 간판들이 즐비한 가운데, 처음 영어 알파벳을 배우며 발음을 이리저리 굴리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네요.
그렇다면, 그 옛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어떠한 언어가 지금의 영어와 같은 위치에 있었는지 알고 계시나요?
정답은 바로 라틴어입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 서양 문명의 근원이었던 라틴어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언어지만, 지금의 영어 이상으로 당시 위상을 떨치던 언어였다는 사실입니다.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민트색의 표지가 눈에 띄어 읽게 된 책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자 -을 통해 낯설고 생소하기만 했던 새로운 언어의 세계에 푹 빠져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이며, 한국과 로마를 오가며 이탈리아 법무법인에서 일했고, 서강대학교에서 라틴어 강좌를 진행했는데, 그때 강의 내용을 담은 책이 바로 <라틴어 수업>입니다.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려면 유럽의 역사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법에 통달해야 하며 유럽인들도 어려워하는 라틴어와 기타 유럽어를 잘 구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라틴어로 진행하는 사법연수원 3년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고 하니,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짐작이 되는 것 같습니다.
- 다음은 <라틴어 수업>에서 요약, 발췌한 내용입니다. -
'숨마 쿰 라우데' (Summa cum laude)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 말은 유럽의 대학에서 졸업장의 '최우등'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쓰인 단어를 분석해보면, '가장 높은, 꼭대기의, 정상의'라는 의미의 형용사 '숨마'와 '쿰'이라는 전치사, '찬미, 칭찬' 을 의미하는 '라우데'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좋은 수업도 한편의 좋은 영화, 심금을 울리는 한 곡의 노래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수업에서 다루는 지식이 학생들의 삶의 어느 부분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어야 하고, 어떤 지식에 대해 학생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확장시킬 여지를 던져줘야 합니다. 단순히 지식 그 자체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활용할 방법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또한 그 지식 외의 것에 대해서도 갖도록 해줘야 하죠.
학생이 자발적으로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학생의 개인적인 성장이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 교육의 상대평가라는 평가 시스템은 철저한 비교를 통해 학생들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고 점수를 매깁니다.
경쟁 구도는 스스로 동기를 찾고 발전 시켜 공부하기보다는 다른 학생들과의 경쟁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성장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로 학생들을 쉽게 좌절하게 만들고 의욕을 잃게 합니다.
유럽 대학의 평가방식은 학교에 따라, 교수 재량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절대 평가로 이루어집니다. 특히 라틴어 성적을 매기는 표현을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적 평가에 쓰이는 표현을 단계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숨마 쿰 라우데 |
Summa cum laude |
최우등 |
마냐/마그나 쿰 라우데 |
Magna cum laude |
우수 |
쿰 라우데 |
Cum laude |
우등 |
베네 |
Bene |
좋음. 잘했음 |
평가 언어가 모두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잘한다, 보통이다, 못한다' 식의 단정적이고 닫힌 구분이 아니라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겁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스펙트럼 위에서라면 학생들과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닌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가 나를 '숨마 쿰 라우데' 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숨마 쿰 라우데' 라는 존재감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지 않아도 세상은 여러모로 우리를 위축되게 하고 보잘것 없게 만드니까요. 그런 가운데 우리 자신마저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나를 존중해주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 또 무언가에 '숨마 쿰 라우데'입니다.
여러분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혹시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보다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더 비난하고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을 칭찬하는 말은 쉽게 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채찍만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스스로에 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최고의 천사가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더 이상 남과의 비교와 경쟁이란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에 대한 불확신에 가득찬 채로 소중한 인생의 일부를 낭비하는 일이 없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숨마 쿰 라우데' (Summa cum laude) 입니다. 아니라구요? 그렇다하더라도 최소한 Bene 입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좋았고, 아주 잘해오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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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 [인문학과 독서]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라틴어 수업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