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타지에서 오랜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귀국하니, 타향살이보다 좋은 점들이 너무나도 많아 행복에 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운 가족, 친지, 친구들 곁에 있을 수 있고, 꿈에서라도 먹고 싶었던 내 몸이 간절하게 원하던 음식들이 사방천지에 널려있는데다가 저녁 8시경만 되면, 상점이 문을 닫고 거리가 스산해지던 유럽의 여느 골목들과 달리 대한민국이란 곳은 누군가가 마치 요술을 부린 듯 24시간 휘황찬란한 불빛과 네온사인들이 거리 곳곳을 밝혀주어 언제 어디서라도 외롭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감격스러운 순간들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물론 가끔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았고, 무척 시끌시끌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조금 필요했던 것을 제하고는 나의 고향이 안겨주는 행복은 귀국 후 수개월 이상 지속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그게 탈이라면 탈이랄까요?
너무나도 잘 적응해서 살고 있습니다.
마냥 행복함에 빠져 지내다가 조금씩 익숙하지 않은 문화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홈쇼핑 방송이었어요. 제가 외국을 나가기 전에는 TV에서 홈쇼핑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았었거든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 방송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흠, 어떤 제품인지 한번 볼까? 우와, 진짜 맛있겠다. 저렇게 크고 실한 것이 또 있을까? 어~ , 곧 매진이라고 하네. 어머. 카드 어딨어. 지갑!!!
결제 완료 후 주문한 물건이 배송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그토록 기다리던 물건을 받고는 또다시 흐뭇한 행복함에 빠져들기를 반복하다 보니, 왠지 방송과는 다른 모양의 물건과 음식의 맛, 다른 크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품질과 디자인, 그리고 그동안 홈쇼핑에 재미를 붙여 구매한 결과 당시에는 6개월 무이자 할부였는데, 무이자 할부로 결제한 물건들의 횟수가 쌓여 월별로 갚아야 하는 카드 값이 놀란 만큼 불어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홈쇼핑 주문 안 해야지 하면서도 쇼핑 호스트분들의 전문적인 설명과 압도적으로 설득되는 멘트 하나하나를 듣고 있노라면, 어머 파란색 매진 임박! 빨리빨리 결제 !!! 를 외치면서 또다시 카드 대금 목록에 어김없이 기재되고 말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가끔씩 물건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할인도 많이 받고, 사은품도 듬뿍 받는 재미에 빠져 홈쇼핑의 열혈팬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 대청소를 하려고 물건을 정리하는데, 쌓아만 두고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별로 필요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내가 안 쓰는 물건을 남에게 버리듯 주는 것도 탐탁지 않고, 정말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들을 왜 구매했을까? 이게 돈이 다 얼마야?
귀국 후 처음 본 홈쇼핑의 재미에 푹 빠져 볼 때마다 '어쩌면 저렇게 좋은 물건들을 덤(사은품)도 받을 수 있고, 무이자 할부니까 괜찮겠지'라며 나에게 좋은 소비 활동이라고 여기며 구매했는데, 결국은 특별히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소비하고 결국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 채 창고에 모셔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왜 모르고 있었을까? 귀국 후 누구라도 나에게 이런 사실을 귀뜸해주었더라면 괜찮지 않았을까? 아니 알았더라도 일단 경험하고 판단하는 성향의 특성상 다른 이의 충고를 한 귀로 듣고 그냥 흘려 버렸을 것입니다. 아니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들이 나와 같은 홈쇼핑 열혈팬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합리적으로 소비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던지라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를 위한 쇼핑인가? 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좋은 혜택을 받으며 구매한다면, 그 자체가 문제가 될리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눈앞의 현란한 광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집에 들여놓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그 당시 즐겨 읽었던 책 중에서 자기계발을 위한 지침서로 삼았던 안상헌 강사님의 <생산적인 삶을 위한 자기발전 노트 50>의 내용이 제게 도움이 되었기에 오늘도 소비의 유혹에 흔들리고 계신다면 도움이 되실 수 있도록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Skill of Life
다수의 강요를 극복하는 방법
1. 광고를 믿지 마라.
광고를 믿어서는 안 된다. 광고는 본질적으로 허구다.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마치 구석기 시대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압력을 행사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필요하도록 느끼게 만드는 것이 광고의 목적이다. 나는 광고를 통해 창의성을 배울 뿐, 그 선전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전혀 믿지 않는다. 광고를 믿으면 나의 욕구가 아닌 상품을 자극하는 욕구에 지배받는 꼭두각시가 된다.
2. 지금 가진 것들을 확인해보라.
타고 다니던 자동차가 지겨워졌다. 남들이 추천하는 괜찮은 차의 사양을 살펴보면서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라며 무릎을 쳤다. 집으로 돌아와 지금 타고 있는 차를 살펴보았다. 자동차의 크기만 다를 뿐 남들이 좋다는 차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른 점이라고 해봐야 대부분이 나에게는 쓸모없는 기능들뿐이었다. 나는 차를 바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가진 것의 기능들을 확인해보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3. 나만의 목표를 갖자.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자신만의 목표를 가져야 한다. 자신만의 목표는 자기가 지향하는 바를 알려준다. 지향한다는 것은 중요시한다는 말이고 생활의 방향을 그곳으로 잡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일단 목표를 정하고 나면 어떻게 하면 그것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는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나만의 목표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의 목표나 방법론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올바른 삶의 목표를 세우자.
여러분께서는 위에서 제시하는 세 가지 방안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나요? 물론 이 세 가지가 절대적인 해답을 주거나 우리들의 소비 스타일을 당장 바꿔주지는 않겠지만, 현명하고 똑똑한 소비 생활을 위한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
조금씩 홈쇼핑 방송 시청을 줄여나가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몇 번은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홈쇼핑 광고 뿐 아니라 웬만한 광고를 보더라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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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통장에 돈이 있었는데, 잔고가 없는 게 이상해서 확인해보니 내가 쓴 게 맞더라는 이야기가 무척 공감이 갑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 같지만, 굳이 없어도 살 수 있다면 과감하게 소비를 포기할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함께 배우고 알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