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더불어 숲] 신영복의 세계 기행 ⑧ - 이집트의 피라미드

mood.er 2019. 7. 1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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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영혼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자화상


기원전 3,000년경부터 3세기 사이에 미라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당시 사람들이 저승과 이승을 연결해 준다고 믿었던 나일 강가에서 아누비스(미라와 방부 처리의 신) 마스크를 쓴 집행관이 미라 제작을 지휘했다고 합니다.


미라를 제작하는 기간은 무려 70일이 걸렸다고 하며 죽은 사람의 시체가 썩지 않도록 방부 처리한 뒤 생전 모습과 똑같이 생긴 마스크를 제작하여 미라의 얼굴에 씌워 주어 죽은 영혼이 부활하게 될 때 알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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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집트 쿠푸왕(고대 왕국 제 4왕조 2대 파라오)의 미라가 안치된 피라미드 건축물은 정사각형 바닥 위에 일정한 크기의 돌을 쌓아 올렸는데, 그것의 규모가 그 어떤 권력자들이 잠들어 있는 무덤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웅장하고 거대하여 오늘날까지도 경이롭고 신비한 건축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토록 엄청난 정성과 노력을 들여 파라오의 시신을 미라로 제작하고 거대한 피라미드에 안치시킬 만큼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의 죽음과 사후 세계, 그리고 영혼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계단식 피라미드에 안치된 조세르 왕의 미라, 그 밖에도 카프레 왕, 멘카우레 왕, 대피라미드에 안치된 쿠푸왕 등의 영혼은 이미 부활하여 그들의 전설처럼 영원히 지지 않는 북극성의 주변에서 살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이러한 궁금증을 갖고 신영복 교수님의 돌아오지 않는 영혼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자화상 – 이집트의 피라미드 - 편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에서 발췌)


이집트는 피라미드 속에 있다고 할 만큼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상징입니다. 피라미드는 무덤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공간입니다. 그러나 최후의 공간은 아닙니다. 육신을 떠난 영혼이 다시 세상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다리는 영혼 대신에 관광객들이 줄지어 찾아들고 있습니다. 나는 피라미드 속에서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영혼과 미라가 만나는 공간이 아니라 이집트와 우리가 만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이로 시가의 한복판에서부터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신전, 아부심벨 신전 등 가는 곳마다 거대한 람세스 2세 석상을 만나게 됩니다. 람세스 2세 석상은 이집트의 루이 14세라는 그의 별명에 어울리지 않는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람세스 2세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고대 이집트를 한없이 친근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다가 카이로 박물관의 유리관 속에 있는 람세스 2세의 미라를 보는 순간,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선 미라가 시신이기 때문에 오는 충격입니다. 


뼈와 가죽으로만 남아 있는 미라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의 어떤 최후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람세스 2세의 미라는 노인이었습니다. 왼손을 약간 들어 올리고 무어라고 이야기를 꺼낼 듯한 자세였습니다. 석상이 된 람세스 2세가 들려주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복잡한 충격에서 벗어난 후에 밀려드는 감회는 세월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살았던 기원전 1,300년에서부터 오늘까지의 시간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3,300년. 참으로 길고 긴 세월입니다. 3,300년 동안 그는 자신의 영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죽음과 함께 육신을 떠나 하늘을 여행하다가 정말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이집트를 머무는 동안 나는 영혼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수시로 반추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 문명은 인류 문명의 운형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영혼의 불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윤회 사상이나 중국의 천명(天命) 사상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 사상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믿음들이 이제는 빛바랜 유적과 함께 부질없는 과거의 우매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치 영혼을 기다리는 미라처럼 허망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혼 불멸과 영생에 대한 믿음은 이제 과거의 어리석은 생각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사라진 것은 영혼에 대한 믿음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참으로 모든 것이 변해 버렸습니다. 그럴수록 나로서는 3,300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리고 있는 람세스 2세의 메마른 모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거대한 피라미드의 신비 공간에서 들려 나와 박물관의 유리관 속에서 무언가 이야기하려는 듯한 람세스 2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잠자는 나일강물과 함께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마음 쓸쓸해집니다. 이집트 문명은 그리스 – 로마 문명의 원형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피카소의 선과 색과 큐비즘이 이집트를 베낀 것이라고 할 정도로 이집트는 인류 문명의 탁월한 높이를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나는 이집트의 신전과 무덤 속의 벽화를 보면서 아직도 우리는 이집트의 조형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지극히 간소화된 구도, 그리고 문자와 회화가 이루어 내고 있는 전달의 완벽함은 그 이후의 모든 미학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혼 불멸에 대한 이집트인의 믿음도 우리들이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특히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는 권력과 부, 그리고 그것의 불멸에 대한 집착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나는 사람이 영생하지 않는 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그나마 세상의 모습이 지금보다 나을 리가 없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피라미드를 쌓아 불멸과 영생을 도모하였듯이, 오늘 우리들 역시 저마다의 피라미드를 쌓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 쌓은 것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한없이 충실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 주고 잇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을 뿐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그 허무함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우리가 쌓고 있는 것들 중 얼마만큼이 남을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미라와 피라미드를 보면 마치 옛날 옛적의 신화를 읽었을 때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을 갖곤 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세상이라는 느낌이었다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영복 교수님의 이야기처럼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는 권력과 부, 그리고 그것의 불멸에 대한 집착 저마다의 피라미드를 쌓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 쌓은 것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한없이 충실하고 있는 것 결국 이집트인들의 모습과 우리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돌아오지 않는 영혼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쌓고 있는 것 중 얼마만큼이 남을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쌓고 있고, 쌓아 올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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