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더불어 숲] 신영복의 세계 기행 ⑨ - 만리장성에 올라

mood.er 2019. 7. 1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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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장성보다 낫습니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기원전 220년경 북방 민족(흉노족)의 침입을 막고 방어하기 위해 산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춘추전국시대에 각 나라가 만든 요새와 성벽을 연결해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 후로 국경 방어를 위해 확장되거나 오랫동안 방치되는 것을 반복하며, 원나라(몽골족이 세움)를 몰아낸 명나라가 북방 방어를 위해 다시 장성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장성 축조가 다시 활성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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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수도인 베이징(명나라 제 3대왕 영락제 때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김) 부근은 이중으로 견고하게 성벽을 쌓아 올렸다고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고, 서쪽에서 동쪽까지의 길이가 2,700km에 이르는데 성벽이 쌓인 곳의 높낮이와 구불구불한 지형 등을 모두 합쳤을 때는 무려 6,352km에 이른다고 하니 달에서도 보이는 지구상의 유일한 건축물이라는 소문이 실감 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거대한 성벽인 만리장성을 세우고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위험한 산세와 지형에 내몰려 극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는지 마음 한쪽이 답답하고 무거워집니다. 실제로 강제 노동에 시달린 수많은 사람들이 성벽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사망했고, 산세가 험한 지형인 경우 그 시신을 찾을 수조차 없었다고 하니 이 거대한 구조물 뒤에 숨겨진 수많은 사람들의 한과 슬픔을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만리장성 축조에 참여했던 이들의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애환은 얼마나 참기 힘든 고통이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에서 발췌)


오늘은 만리장성에서 엽서를 띄웁니다.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을 뿐 아니라 만리장성이 가장 운치 있게 보인다는 팔달령을 마다하고 우리는 그나마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는 사마대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가능하다면 만리장성을 당시의 심정으로 대면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사마대에는 관광객이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더욱 다행스럽게도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의 많은 눈이 내려 산야를 하얗게 덮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곳 사마대에 도착하여 장성을 바라보고 또 장성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장성을 당시의 의미로 읽는다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동차의 속도와 비행기의 높이에 익숙해진 우리들로서는 우선 우리의 속도감이나 공간 정서가 당시로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변해 있었습니다. 더구나 전쟁의 방법이 판이하게 달라진 오늘날에는 장성을 쌓고 국경의 근심을 덜었던 당시 사람들의 안도감을 실감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하물며 이 장성 앞에서 말 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던 북방 민족의 막막한 체념이야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만리장성을 비록 당시의 의미로 만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세찬 바람이 적설(積雪)을 헤치고 있는 성벽에 앉아서 애써 과거의 정서를 길어 올리고 있습니다. 만 리에 달하는 장성을 역시 장대한 축조물이었습니다. 장성을 찾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경탄을 금치 못하는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새들도 넘기 힘든 이 험준한 산맥의 능선 위에 다시 만 리가 넘는 성벽을 쌓아 올린 그 엄청난 역사(役事)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많은 벽돌 한 장 한 장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노역(勞役)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리장성은 그 속에  담겨 있는 무수한 희생으로 하여 우리들이 수천 년 동안 골몰해 왔던 역사의 실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강대한 제국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을 부리며 매진해 온 부국강병의 역사를 보여 줍니다. 벽돌 한 장 한 장에 맺혀 있는 무고한 사람들의 고한(膏汗)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푸른 산에 올라 아버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아버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아들아. 밤낮으로 쉴 틈도 없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머물지 말고 돌아오너라.'


잎이 다진 산에 올라 어머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어머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우리 막내야. 밤낮으로 잠도 못 자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이 어미 저버리지 말고 돌아오너라.' 


산등성이에 올라 형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형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동생아. 밤이나 낮이나 고역에 시달리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너라.'


마치 나 자신이 높은 산에 올라 고향을 그리는 당사자인 듯 처연한 마음이 됩니다. 만리장성의 축조분만 아니라 성곽, 궁궐 등 끊임없는 토목공사와 전쟁으로 뿔뿔이 찢어져야 했던 이산의 아픔이 절절히 다가옵니다. 



이 성벽 축조에 희생된 사람은 물론이며 그 숱한 사람들의 아픔에 울적해 하는 우리들을 위해서라도 만리장성은 최소한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기어이 찾아낸 것이 만리장성은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성벽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공격 거점이 아니라 방어 보루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세계의 이곳저곳을 주마(走馬)하는 동안  곳곳에 세워진 거대한 성채와 신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항상 그 밑에 묻힌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과 노역을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만큼 만리장성이 방어의 보루라는 깨달음은 무척이나 귀중한 발견처럼 느껴졌습니다.


비록 그것에 배어 있는 애끊는 별리의 아픔과 참혹한 희생에 마음 아프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 만약 그것이 어느 한 사람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용으로 우뚝 서서 미연에 침략을 단념케 하고 전쟁을 예방하였다면 참으로 다행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인류의 귀중한 유산이 되고 지혜의 표장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만리장성을 되돌아보는 나의 마음은 아무래도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만리장성을 예찬할 수 없는 까닭은 장성의 축조는 어김없이 민초들의 곤궁과 분노로 이어지고 천하를 다시 대란으로 몰고 갔기 때문입니다. 그 무모함을 타매할 수 없는 까닭은 잔혹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장성을  쌓아 전쟁을 막으려 했던 일말의 고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공격용과 방어용 구분이 애매해진 무기들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 쌓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보다는 분명히 지혜롭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당 태종은 북방 흉노족과 성공적으로 화친을 맺고 돌아온 이세적 장군에게 인현장성(人賢長城)이라는 네 글자를 써 주었습니다. 사람이 장성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장성으로도 얻을 수 없었던 국경의 화평을 필마단신으로 이루어 냈기 때문입니다. 



방어보다 화평이 낫고, 장성보다 사람이 나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전쟁 같은 공세가 거침없이 밀어닥치기는 만리장성 당시와 마찬가지입니다. 세계화 논리를 앞세우고 더욱 거세게 쇄도하는 외풍과 외압이 이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들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울타리마저 스스로 헐어야 하는 난감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화평을 만들어 내고 사람을 키워 내는 진정한 성을 쌓을 수는 없는가. 도도한 욕망의 거품으로부터 진솔한 인간적 가치를 지켜주는 보루를 쌓을 수 없는가. 그리고 이러한 보루들을 연결하여 20세기를 관류해 온 쟁투의 역사를 그 앞에 멈추어 서게 할 새로운 세기의 성벽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만리장성은 이 모든 생각을 싣고 강물처럼 가슴속으로 흘러듭니다.




만리장성은 무려 이천 년(기원전 3세기 이전부터 17세기)이 넘도록 쌓아 올려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것을 쌓던 사람이 죽으면 그 자리에 묻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도 합니다. 어렸을 적 옛날이야기처럼 들었던 만리장성 노역에 남편을 떠나보낸 '맹강녀의 통곡'이 가슴속 깊이 와 닿습니다.


화평을 만들어 내고 사람을 키워 내는 진정한 성을 쌓을 수는 없는가? 도도한 욕망의 거품으로부터 진솔한 인간적 가치를 지켜주는 보루를 쌓을 수 없는가? 쟁투의 역사를 그 앞에 멈추어 서게 할 새로운 세기의 성벽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우리는 신영복 교수님께서 던지신 위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부디 찾을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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